제 목 | [조선일보][해상풍력 세계1위 영국 르포] ①풍력터빈이 한바퀴 돌면 3만5000가구 '모닝 커피' 해결(2019.09.21) |
날 짜 | 2019.09.25 |
영국 런던행 항공기가 히드로 국제공항에 착륙하기 30분 전, 수십개의 새하얀 블레이드(날개)가 푸른 바다 위를 질서정연하게 수놓은 풍경이 창밖 시야에 들어온다. 영국의 해상풍력발전 핵심 지구 6곳 중 한 곳인 런던 인근 사우스이스트(South East) 해상풍력발전지역에 자리잡은 램피온 풍력단지의 모습이다. 400MW의 전력 규모를 갖춘 램피온 풍력단지는 영국 남동부 지역 3만5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이곳에 설치된 116개의 풍력터빈 중 터빈 1개가 한 바퀴만 돌아도 이 지역 주민들의 모닝 커피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전력이 생산된다고 한다. 한때 산업혁명 이후 회색 석탄재로 뒤덮였던 영국은 이제 맑은 공기를 가르는 풍력 터빈(발전기)들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영국 남동부 브라이튼에 조성된 램피온 해상풍력단지. /이경민 기자
해상풍력은 육상풍력보다 소음공해가 적으며, 풍력과 해심 등의 조건에 부합하면 발전단지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관련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건설 비용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영국은 해상풍력산업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섬나라라는 이점을 활용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상풍력 에너지를 생산하는 국가가 됐다.터빈을 설치하기에 적당한 해심과 단단한 해저 지형을 갖춘 것도 해상풍력 경쟁력 제고에 큰 도움이 됐다. 2018 년 기준 영국의 해상풍력 발전량은 약 8GW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 원자력발전소(1기당 평균 1GW) 8기의 전력 설비 용량과 맞먹는 규모다. 독일(6.3GW)과 중국(2.6GW)이 각각 2위와 3위다. 영국의 해상풍력단지 수는 총 39개, 풍력터빈 수는 4543개로 역시 세계 1위다. 영국은 북쪽 해안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총 6개 핵심 해상풍력발전지구를 조성했다. 노스이스턴, 티스벨리, 험버, 그레이트 야마우스, 사우스이스트 등 5개 지구가 동쪽 해안에 집중돼있고, 서쪽엔 전통적인 항만도시 리버풀시티 지구가 자리잡았다. 영국 정부는 2018 년 1312MW 규모를 추가로 건설해 2020년 목표 전력량인 10GW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 영국 정부의 ‘정책·재정·혁신’ 3박자가 이끈 해상풍력산업 영국 해상풍력산업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급성장했다. 바람이 많이 불고 풍력터빈을 설치하기에 적합한 해양 환경을 갖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장점이지만, 정부의 강력한 정책·재정 지원이 없었다면 해상풍력 최강국으로 성장하긴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런던에서 만난 브루스 클레멘츠 영국 국제통상부 해상풍력 자문위원은 "영국 정부는 기후 변화와 깨끗한 에너지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과 정책을 통해 해상풍력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며 "정부가 해상풍력과 관련한 규제와 라이센스, 투자를 보장하기 때문에 업계가 확신을 갖고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2년 마다 해상풍력 사업 예산을 파악하고 보조금을 통해 재정적으로도 지원하고 있다. 최근 영국 정부는 2030년까지 해상풍력 산업에 5억7000만파운드(약 85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또 영국 정부가 직접 관련 사업 보증에 나서 사업자들의 금융 대출을 돕고있다. 영국의 해양 대지는 대부분 왕실 소유인 만큼 해상풍력 사업자들이 왕실로부터 대지를 쉽게 임대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 됐다. 해상풍력의 단점 중 하나는 초기 설치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영국 정부는 비용 절감을 위해 연구개발(R&D)을 양성하는 등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2년까지 공공 R&D와 관련된 지출을 70억파운드(약10조3000억원)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클레멘츠 자문위원은 "터빈 개발 등 혁신적인 기술 도입으로 상당한 비용을 절감했다"며 "해상풍력은 어떤 에너지 보다도 설치 비용이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스모그 등 혹독한 환경재난을 겪고 난 후 친환경 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영국 수도 런던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경민 기자
◇ 2030년까지 30GW 가동 목표…‘탄소 제로’ 영국 만든다 영국 해상풍력산업의 다음 목표는 해상풍력을 영국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지난 3월 영국 정부는 2030년까지 해상풍력발전 목표량을 30GW로 설정하는 민관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2020년 목표량(10GW)의 세 배로, 영국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30%에 달한다. 정부는 풍부한 재정 지원과 투자 유치, 기술 혁신을 통해 10년 만에 20GW를 생산하는 풍력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 같은 계획은 영국의 친환경 정책인 ‘탄소제로 2050’의 일환이다. 영국은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80%로 줄이기로 한 기존 목표를 100% 줄이는 것으로 최근 상향 조정했다. 해상풍력 비중을 높이는 것은 탄소 배출 절감을 위해 석탄 에너지를 최소화하기로 한데 따른 대안인 것이다. 영국은 해상풍력을 영국 경제 발전을 위한 동력으로도 활용할 방안이다. 2030년까지 30GW의 용량의 해상풍력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약 400억파운드(약 59조원)의 인프라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영국 정부는 추산한다. 이를 통해 2만70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또 해상풍력 기술 수출을 통해 26억파운드(약 3조8000억원)의 수익 창출도 기대하고 있다. ◇ 英해상풍력 비중 10년 만에 0.8% → 10%, 전력 수급 안정성 고민도 그런데 재생에너지 비율을 빠르게 늘려가던 영국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지난 8월 9일 런던을 비롯한 남부와 북동부에 전력 공급이 끊겨 열차와 지하철, 공항 시스템이 일시 마비되고 약 100만가구에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런던 북쪽 변전소 인근 전송회로에 낙뢰가 떨어져 험버 지역 혼시(Hornsea)1 해상풍력단지(790MW규모)와 인근 가스 화력발전소(240MW)가 작동을 멈추었고, 그리드(계통)의 주파수를 크게 떨어뜨린 것이 전력공급 중단으로 이어졌다.
영국 북동부 험버 지역 그림스비 항구 인근에 조성된 혼시(Hornsea) 1 해상풍력단지. 지난달 9일 낙뢰 영향으로 전력 생산이 중단된 곳이다. /오스테드 영국 전력공기업 내셔널그리드는 예비 전력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대규모 정전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에서는 갑작스런 정전 사고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 하기 위해 국내에서 가장 전력 생산량이 큰 발전소의 전력 규모 만큼의 예비 전력을 항상 준비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규모 해상풍력단지와 가스 화력발전소가 우연히 동시에 작동을 멈추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해 기존 예비 전력으로는 지원을 할 수 없었다는 설
명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영국 정부가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과정에서 전력을 저장하는 배터리 기술 개발 등 안정적인 기저 에너지 마련에도 힘써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정전 사태는 영국 정부가 탄소를 줄이는 과정에서 영국 전력 시스템이 해결해야 하는 광범위한 문제를 드러낸 사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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